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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시의원은 못 됐지만 한인사회 단합의 힘 큰 성과"

하나가 된 박후보 지지 한인 정치력 신장 계기 승리는 없었지만 패자도 없었다. 10일 가든그로브 시의회의 앤드루 도 전 의원 후임 선출에서 박동우 후보가 아깝게 낙선했다. 하지만 한인 시의원 배출을 위해 단합된 지지를 보낸 가든그로브 한인들과 통산 세 번째 시의원 도전에 나서며 한인 정치력 신장 필요성을 일깨운 박 후보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채 시의회장을 빠져나왔다. 빌 달턴 시장 스티브 존스 부시장 브루스 브로드워터 디나 우엔 시의원은 이날 정기회의에서 지난 달 사퇴한 앤드루 도 전 가든그로브 시의원의 후임을 보궐선거 대신 시의원 표결로 정하기로 합의한 직후 투표에 돌입했다. 투표는 시의원 추천과 다른 시의원의 동의를 얻은 후보를 놓고 4명 시의원이 표를 행사 찬성이 2표면 부결되고 3표면 당선이 확정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번째 투표 대상이었던 베트남계 팻 부이와 두 번째 후보 데니스 엘스워스는 나란히 찬성 2표에 그쳤다. 디나 우엔 의원이 로빈 마카리오 후보를 추천했으나 빌 달턴 시장이 수정 제안을 통해 박동우 후보를 추천했다. 우엔 의원의 동의를 얻어 실시된 투표에서 박 후보 또한 2표를 얻었다. 박 후보 지원을 위해 시의회장을 찾은 약 30명의 한인들 사이에서 탄식과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막바로 브로드워터 의원이 크리스 비어드를 추천하자 우엔 의원이 동의했다. 두 의원의 표에 달턴 시장의 찬성표가 더해지며 비어드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한인 방청객들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비록 시의원 당선엔 실패했지만 박 후보는 이내 여유를 되찾고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저녁도 굶은 채 장시간 시의회장을 지킨 한인들에게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한인 시의원 배출이란 대의 아래 한 마음으로 뭉쳤던 한인단체 관계자들도 박 후보에게 "수고 많았다"며 악수를 청했다. 주차장으로 향하던 박 후보는 "성원과 지지를 보내 준 한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인단체 관계자들은 아쉬운 가운데에도 이구동성으로 박 후보 지지 활동이 가든그로브 한인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했다. OC한인회 한시헌 수석부회장은 "박 후보가 시의원이 되진 못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한인단체들이 하나로 뭉쳤던 것 가든그로브 한인들의 결집된 의지를 시의원들에게 보여준 것은 큰 수확"이라고 평했다. 민주평통 OC.SD 지역협의회 안영대 회장도 "아무도 엄두를 못 내는 가운데 유일한 한인 시의원 후보로 나서 선전한 박 후보에게 박수를 보낸다"며 "이번에 한인단체들이 보여준 모습이 앞으로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2011-05-11

[OC] '박동우 당선' 한인단체장 연명 서한

"한인들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자." 오늘(10일) 오후 6시30분 시작될 가든그로브 시의회는 유례 없이 많은 한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릴 전망이다. 한인단체 관계자 15명이 9일 한인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오늘 열릴 시의회 정기회의에 한인들이 대거 참석 유일한 한인 후보 박동우 시 도시계획위원회 커미셔너의 시의원 당선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가든그로브 시의회는 지난 달 사임한 앤드루 도 전 의원 후임 선출 방법을 오늘 결정한다. 9일 모임에서 한인단체 관계자들은 오늘 회의에서 보궐선거를 치르지 않는 것이 확정될 경우 즉석에서 시의원 4명의 표결로 후임자를 결정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한편 박 후보를 지지하는 한인사회의 결집된 의지를 되도록 빨리 과시하는 것이 전략상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인단체 관계자들은 9일 박 후보 지지 서한에 연명으로 서명한 뒤 이 서한을 가든그로브시 빌 달턴 시장 스티브 존스 부시장 디나 우엔 브루스 브로드워터 시의원에게 전달했다. 박 후보 지지 서한 서명엔 10개 주요 한인 단체 회장들이 모두 참여했다. 이들은 오늘 회의에서 도 전 의원 후임이 선출되지 않을 경우 추후 열릴 시의회에도 많은 한인들이 참석하도록 독려하기로 했다. 한인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모임에서 박 후보 지원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인 끝에 도가 지나친 지지 활동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지지 서한을 보내고 많은 한인들이 시의회장을 찾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란 결론을 내렸다. 한인회 한시헌 수석부회장은 "가든그로브 한인사회의 존재와 염원을 시의원들에게 알리는 것은 박 후보 당선 여부와 관계 없이 중요한 일"이라며 "타인종 커뮤니티를 자극하지 않고 한인사회의 바람을 적정한 선에서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평통 OC.SD지회 안영대 회장 경찰후원회 나규성 회장 등도 "시의원들이 오늘 후임 선출을 하지 않더라도 한인사회가 박 후보의 당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으니 뜻을 같이 하는 한인들은 시의회장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엔 박 후보도 참석해 한인단체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박 후보는 "한인단체장들이 부족한 사람을 이렇게 도와주니 뭐라 감사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좋은 결과가 나오면 한인사회를 대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시의회 장소는 가든그로브의 커뮤니티 미팅센터(11300 Stanford Ave.)이다. ▶문의: (714)530-4810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2011-05-09

[OC] [백악관 국가장애위 박동우 정책위원의 군산에서 워싱턴까지-하] "정치력의 원천은 로컬"

박동우 위원은 고교 시절 체육과목에서 A학점을 받은 이후 매사에 도전을 회피하지 않게 됐다. "남들보다 좀 더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어지간한 건 다 할 수 있다"는 그는 1998년 LA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6시간 12분의 기록으로 완주해 냈다. 당시 박 위원은 UDLA란 라티노 장애인단체를 위해 마일당 1달러씩의 기금을 기부 받는 이벤트에 참여한 터였다. "26.2 마일을 완주하면 26달러가 UDLA에 기부되는 건데 어떤 사람이 나한테 '당신에겐 마일당 2달러를 기부하고 만약 완주하면 500달러를 따로 기부하겠다'"고 제의했지요. 18마일 지점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하고 나중엔 감각도 없어졌어요. 장애인단체에 많이 기부하고 싶다는 마음에 오기로 끝까지 뛰었어요." 결국 그는 552달러를 장애인단체에 건넬 수 있었다. 박 위원은 한 손으로 골프도 배웠다. "한창 때엔 보기 게임을 할 정도였어요. 어떤 사람들은 나한테 지면 창피하다고 같이 라운딩을 하지 않겠다고도 하더군요." USC 졸업 후 '코리안 커뮤니티서비스'란 비영리단체에서 잠시 일을 했던 그는 1978년 퍼시픽 텔레폰(현 AT&T)에 입사 26년간 근무한 뒤 7년 전 F&M 은행으로 옮겼다. 박 위원은 타인종 인사들과 쌓은 폭 넓은 교분을 바탕으로 한인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오렌지카운티 교통국 교통위원회 장애인자문위원 시절엔 OC한미노인회가 버스 운영기금 50만 달러를 카운티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것을 도왔고 가든그로브 로터리클럽에선 유일한 한인 회원으로서 회장도 역임했다. 또 안양시와의 자매결연 사업을 주도하는 자매도시협회에서도 회장을 맡은 바 있다. 그는 로터리클럽 자매도시협회에서의 활동을 통해 가든그로브와 안양시가 우의를 돈독히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가든그로브 안양 로터리클럽은 두 도시의 자매결연이 인연이 돼 지난 2003년 자매결연을 맺었다. 두 로터리클럽은 지난 2005년 각기 모금한 돈에 국제로터리클럽 본부의 매칭펀드를 합쳐 안양 베데스다 장애교육원과 안양 양로병원에 각각 12인승 밴 차량과 휠체어를 구입 기증한 바 있다. 두 로터리클럽은 올해에도 동일한 프로젝트를 통해 다음 달 2일 한국장애인부모회 안양시지부에 미니 밴을 전달하게 된다. 박 위원은 미니 밴 전달식 참가와 가든그로브 고교생들의 연례 안양방문행사 인솔을 위해 오는 31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현재 평통 OC.SD 지역협의회에서 경제통상위원으로 활동하며 OC 지자체들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지지 결의안 채택 러시에도 힘을 보태고 있는 박 위원은 "정치력은 로컬에서 싹이 튼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지난 2002년 가든그로브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1800여 표 차이로 아깝게 낙선했던 박 위원은 "한인사회의 정치력을 키우려면 모든 한인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고 활동에 참여하고 반드시 투표를 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역설했다. 임상환 기자

2010-03-23

[OC] [백악관 국가장애위 박동우 정책위원의 군산에서 워싱턴까지-상] 3살때 왼팔과 맞바꾼 생명

지난 19일 연방상원 본회의 인준을 받아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위원이 된 박동우(영어명 조셉.58)씨도 마찬가지다. 차관보급에 해당하는 행정부 고위직에 진출하게 된 박 위원의 인생 여정을 통해 그가 삶에서 직면하는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 지 두차례에 걸쳐 살펴 봤다. 박 위원은 민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시절 전북 군산에서 박종호(작고) 정숙(84)씨 부부 사이에 3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쟁의 끝자락은 전국 방방곡곡에 가난이란 그림자를 드리워 놓았고 박씨는 불과 3살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박씨의 부모는 열에 달떠 불덩어리가 된 장남을 붙들고 며칠을 안타까워 했지만 당시로선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한숨과 눈물 끝에 모든 것을 포기한 박씨 부부는 아기를 이불에 둘둘 말아 윗목에 놓아 두었다고 한다. "하늘의 뜻에 맡긴 거지요. 죽든 지 살든 지…" 천운이었는 지 아기의 열은 다음 날 씻은 듯 내렸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아기의 왼팔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왼팔의 자유와 맞바꾼 생명이었다. 박 위원 가족은 그가 9살 때 내장산 인근의 산골마을 전라북도 신태인으로 이사했다. 어린 시절 박 위원은 하루 3시간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다. 이리동중학교 진학 후 등하교 시간은 왕복 5시간으로 늘었다. 학창 시절 박 위원은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길에서 만난 동네 아이들이 '외팔이'라며 놀리고 어떤 아이들은 돌을 던졌지요. 속으로는 무척 화가 났지만 참았어요. 화를 내면 지는 것 아닙니까." 박 위원은 서울 영등포고교를 다니던 중 가족이민을 통해 미국에 왔다. 이민 수속이 예상보다 2년이 늦어지는 바람에 박 위원은 18세가 넘은 나이에 LA 하이스쿨 10학년생이 됐다. 미국은 장애인을 괄시하던 한국과는 너무 달랐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생겨 왔던 숱한 마음의 상처도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박 위원은 11학년 시절 인생과 고통을 대하는 시각을 바꿔 놓은 고마운 교사를 만났다. 체육교사인 '미스터 스미스'는 수영반에 들어 온 검은 머리 학생에게 "학기가 끝날 때 까지 한 번에 수영장을 스무 번 왕복하면 A학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전까지 체육시간에 단 한 번도 A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학생 박동우는 기를 쓰고 연습했다. 하지만 한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그에겐 20회 왕복도 만만한 도전이 아니었다. "시험을 보는 데 14번인가 15번을 채우고 나니 힘이 다 빠지는 거예요. 포기할 뻔 했는데 갑자기 '이번이 아니면 언제 체육에서 A를 받을 수 있겠는가'란 생각이 번쩍 머리를 스치는 거예요." 나머지 횟수를 어떻게 채웠는 지 기억조차 못 할 정도로 사투를 벌인 끝에 그는 결국 유일무이한 체육 과목 A학점을 받아 내고야 말았다. 박 위원은 "그 때의 경험이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크게 바꿔 놓았다"고 술회했다.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20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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